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 신화 (문단 편집) === 신화소와 계보 미비 === 유럽 신화나 인도-이란 신화는 물론이고 중국 신화나 일본 신화만 하더라도 화소가 매우 풍부하고 다양한 것에 비해, 한국 신화는 우주와 철학의 계보가 미비하고 단편적인 이야기들 위주이며 그 서사도 깊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다. '단군 이야기'나 '바리공주 이야기' 같은 신화 자체는 전해지지만 민족 전체의 신화상이라는 바구니에서 단군과 해모수가 무슨 관계인지, 바리공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 족보정리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 이 때문에 현대에 전통 문화를 기반으로 한 행사나 홍보물, 창작물 등을 만드는 데도 딱히 차용할 소재가 없거나 한국인에게도 낯선 내용이 등장하는 등의 문제가 생긴다.[*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 '만세'라는 인면조가 등장해 낯선 인상으로 컬트적 인기를 누린다든지, 장르 문학에서 [[한국형 판타지]]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든지 하는 일들이 모두 근원을 찾아 보면 빈약한 고유신화의 화소(스토리)에 있다.] 본디 신들의 [[족보]]는 가장 마지막에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다. 원시 공동체에서는 거대하고 장엄한 이야기보다는 토테미즘 등에 기반한 소박한 이야기 위주로 다신교 신앙이 싹트는 일이 많다. 그런데 이러한 공동체들이 정복에 정복을 거듭하면서 주변지역과 교류해나감에 따라 족보가 정리되는 것이 다신교의 경향이다. 이를테면 그리스에서 본래 계절의 변화를 다스리던 신인 [[제우스]]는 그 숭배 집단이 그리스 전역의 주도권을 쥐어나감에 따라서 주신(主神)으로 여겨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각 도시들이 스스로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우리는 제우스의 후손"이라는 이야기를 주장하게 되면서 이 여자 저 여자를 건드리고 다니는 우리가 아는 그 난봉꾼 제우스 느낌이 정착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리된 족보'를 [[헤시오도스]]가 전하게 되면서 우리가 아는 체계적이고 장엄한 [[그리스 신화]]가 전해지는 것이다. [[중국 신화]]나 [[일본 신화]]도 고대국가 시절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이를 후대에 전하기 위하여 중국의 [[사기(역사책)|사기]], 일본의 [[고사기]]와 [[일본서기]] 같은 '정리된 계보'를 전하면서 21세기까지 보존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단편된 이야기들이 아니라 '계보'를 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신앙 공동체를 아우르는 권위있는 집단이 있어야 하고 이들이 문자로 후대에 전해줘야 한다. 반면 한국신화는 그렇지가 못했는데, 고대국가로서 '신들의 계보'를 정리하였을 것으로 강력하게 추정되는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역사서가[* 고대국가는 역사서와 신화의 구분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구려의 [[광개토대왕릉비]]에서는 국가에서 체계가 정비된 건국신화가 있기에 상당히 정리된 신화가 고구려에 있었을 정황이 높다. 게다가 평양이 고구려의 강역에 포함되면서 고구려 후기에는 이미 [[기자(중국)|기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등 고조선계 전승들과 상당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을 것이다.] 모조리 소실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한국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가 [[통일신라]]도 아닌 [[고려]]의 [[삼국사기]]인데 고대국가의 신화가 그대로 보존되는 것부터가 기적일 것이다. 그나마 [[광개토대왕릉비]] 등의 삼국시대 금석문과 중국사서들의 단편적 기록만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근대에는 [[환단고기]]나 [[부도지]] 같은 [[유사역사학]] 서적이 생겼는데, 창작물의 관점에서 접근하자면 신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나 이들은 대중에게 통용되어 사실을 기망할 목적으로 날조된 책들이기 때문에 역사서에 가까운 형식으로 쓰여졌으며, 따라서 신화로서의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 세력들의 돈벌이를 위한 불량서적이자 정보오염을 부추기는 서적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대표할 만한 게 마고 설화다. 본래 한국 신화의 창세신, 대지모신적 위치에 있는 신이지만 부도지에서 언급하고 있는 창세신화에서도 마고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데다 부도지에서 등장하는 각종 사건들이 한국 지역 전승이나 무속의 전승과 유사성이 많은 것도 문제점. 이는 부도지가 여러 전승들을 마구 섞어 만든 책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우세한 편이다. 그 덕분에 원전인 창세신화를 찾는 것에 애로사항이 생길 정도로 마고의 신화소가 상당부분 오염되었다. 한국신화는 [[원 간섭기]], [[일제강점기]], [[6.25 전쟁]] 등으로 많은 자료가 소실되었으며, 해방 이후의 급격한 공업화 정책으로 인해 전통 신화들을 없어져야 할 무지한 [[미신]] 정도로 치부하고 정부가 나서서 파괴해버린 점들[* 단적인 예로 1970년대 [[박정희 정부]]에서 시행한 [[새마을 운동]]을 주도한 사람은 독실한 [[개신교]] [[목사]]였고, 무속 신앙 같은 한국의 전통 신화적인 요소들을 미신이라 여기며 파괴해 버렸다. 실제로 새마을 운동의 과정에서 시골의 각 마을마다 오랫동안 섬기고 있던 [[서낭당]] 같은 전통 신앙의 터전들이 파괴되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신화상의 족보'''가 끊어지기를 반복했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적받는다. 특히 현대화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신화 계통학의 부재 → 남북으로 분단되어 버린 현실이 가장 큰 장애 요소라고 한다. 고조선-고구려/백제-고려-조선 사이의 신화상의 족보가 하나로 연결되지 않았다. 이는 한반도의 왕조들이 이전의 왕조를 부정하고 새로운 정부의 정통성을 '''단군에게서 직접 위임받은 것'''으로 포장하려고 노력했기에 벌어진 현상이라는 가설이 있다. 조선뿐 아니라 고려도 왕건 본인은 아니지만 아들 광종이 궁예, 후백제 기타 등등의 유산을 철저하게 말살해 버렸다. 그나마 현재 남아 있는 신화 단편들을 일제강점기 민족주의 사학자 [[손진태]] 선생 등이 겨우겨우 수집해서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 좀 있다.[* 다만 이 가설에 진지하게 반박을 하면 다신교 사회에서는 피정복민의 신들이 정복민의 신들의 부하나 자녀들이나 괴물로 격하되는 일은 있을지언정 존재가 지워지는 일은 많지 않다. 그리고 한국 신화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제주도 신화에서는 단군이나 환웅은 그 이름조차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일부 신화학자들은 이를 두고 단군은 원래 평양 지역의 토착신에 불과했으나 고려 말엽에 이르러 국가에서 민족 전체의 시조로 그 위상이 변경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신화 연구는 짜임새 있게 사료들을 분별할 수 있는 지식인, 민족 신화를 수용할 수 있는 문화의식, 이를 유연하게 통합할 수 있는 구심점이 필요한 '''고도의 민족문화 정리 작업'''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사회는 현대까지도 불리한 점이 많다. 심지어 이익을 위해서 급조한 논리를 강요하면서 부딪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서로 싸우지도 배척하지도 말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